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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떠나는 여행/짧은 글. 긴 여운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은 없습니다.”

by 코발트_블루 2003. 12. 24.

2차 대전 중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열대 밀림 한복판에 있던 포로수용소는 늘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전기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지독한 무더위와 살인적인 배고픔 때문에 포로들의 얼굴에는 이미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거의 식량이 공급되지 않는 이 수용소에서는 운 좋게도 쥐를 잡아 먹는다면 그것은 큰 행운이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수용소 안에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단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미국인으로 가방 깊숙한 곳에 양초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절친한 단 한명의 포로에게 이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양초는 가장 위급할 때 중요한 식량이 될 것 이라고…. 그리고 그때는 친구에게도 꼭 나눠주리라는 약속을 했다. 그뒤부터 그 고백을 들은 포로는 혹 친구가 양촐르 혼자 다 먹어 버리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며 밤마다 가방을 노려 보았다.

어느 날 한 포로가 ‘오늘이 크리스마스날이야. 내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낼 수 있었으면….’ 하고 말했다. 그러나 배고픔에 지친 포로들은 아무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양초가 든 가방을 여전히 지켜보던 그 포로는 친구가 부시시 일어나 꿈지럭대며 가방 속에서 양초를 꺼내들자 친구가 혼자 양초를 먹으려는 줄 알고 놀라 숨을 죽였다. 그러나 친구는 양초를 꺼내 판자위에 올려 놓고 숨겨논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갑자기 오두막안이 환해졌다. 포로들은 불빛에 잠을 깼고 하나 둘 촛불 주위로 몰려 들었다. 촛불은 포로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은 없습니다.”
촛불은 점점 활활 타올라 커지더니 포로들의 마음까지 비추는 듯 했다.
“우리 내년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보내자구.”
누군가 또 이렇게 말을 하자 포로들은 환하게 웃으며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자며 서로의 소원을 얘기했다. 그날 그렇게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던 포로들은 아무도 배고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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