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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떠나는 여행

의식

by 코발트_블루 2004. 12. 20.

이책은 처음 부터 끝까지 난해하다는 생각이 였다.

진짜루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혼동속의 생각을 들여다본 느낌이였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책을 읽어 가는 것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들에 대한 감흥은 별로 없다.

역쉬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어.렵.다...


레슬리 마몬 실코의 대표작 『의식』은 지난 1977년 작품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의 바이블로서 영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현대 영미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 단 한 권의 소설만으로도 그녀가 영문학사에 남긴 업적은 충분하다”고 격찬했을 정도다.
책은 출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학기 초가 되면 소설 부분 베스트셀러로 꼭 랭크되며,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따라서 책은 세계 각국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유독 한국에만 번역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책을 추천한 장영희 교수(서강대 영문학)와 번역자 강자모 교수(세종대 영문학)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지성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반성하는 텍스트, 다민족 사회에서 조화와 상생을 가르치는 텍스트, 혹은 인간과 자연의 생태를 생각하는 텍스트로 이 소설을 꼽는다. 이 소설은 백인 주류 사회와 인디언 부족 공동체 양쪽으로부터 소외된 채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고통받는 주인공 타요가 소외와 절망을 극복하고 인간 존재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그린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이 초극의 바탕에는 증오와 적대감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 그리고 조화를 장치함으로써, 상호의존적 관계의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아가 소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화적 모티브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대칭적인 공생을 노래해 그 아름다움의 격을 더하고 있다. 이 소설이 모순되고 부조리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의 정체성’, 개인과 종족과 사회의 상생과 화해를 말하는 ‘관계의 정체성’, 인류와 자연의 조화롭고 대칭적인 사고를 펼치는 ‘생태의 정체성’을 함께 담은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명징해진다.

이 소설은 일반적인 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의 주제의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소설을 통해 작가 실코는 백인사회가 독점해온 권위의 해체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와 가치만이 옳고 진정한 것이라 주장하는 배타적인 문화적 본질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을 백인들과의 접촉 이전의 순수한 상태로 정지한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백인문화와 서로 교류하며 변화하는 역동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는 이를 통해 협상과 중재를 통한 유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화적 교류와 교배를 통한 변화의 중요성은 타요의 구원의 여행을 이끄는 주술의 베토니, 연인인 나이트 스완 등이 모두 혼혈 인디언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베토니는 인디언의 전통을 중시하지만 백인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그것과 융화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또한 이러한 실코의 노력은 ‘백인 창조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주술의 베토니에 의하면 오래 전 세상이 시작될 때 세상이 시작될 때 백인은 없었지만 마법의 힘을 자랑하던 한 인디언 마법사의 이야기를 통해 ‘물고기의 배와 같은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창조되었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백인을 악의 근원으로 보지 않고, 세상의 파괴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 ‘마법사’의 계략에 의해 창조되어 그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희생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는 땅을 포함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운명이 한 점에서 만나는 곳에 당도했다. (중략) 여러 문화와 세계의 경계선들이, 섬세하고 밝은 색의 모래 위에 단조롭고 어두운 선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그 선들은 마법의 마지막 의식인 모래 그림의 한가운데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인류는 파괴자들이 그들 모두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 계획한 운명에 의해 결합되어 다시 한 번 가족이 되었다. (본문 407쪽)

중요한 것은 민족간의 적대감이나 증오심은 모두 ‘마법의 책략’이라는 점을 인지함으로써 마법에 의해 무력하게 파괴될 공동운명체에서 마법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공동운명체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이야기-전통적 이야기, 전쟁 이야기, 그들(백인)의 이야기-가 함께 어울려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이는 다시 한 번 서로 다른 담론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교류?교배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타요가 비전을 통해서 본 “경계는 없고 오직 변이(變移)만이 있는 세상”의 이미지를 통해서 타문화의 수용과 변화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배타적 민족중심주의와 의미는 축소?해체된다.

타요는 우라늄 광산 근처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폐기해야 할 담론은 백인의 담론이 아니라 백인과 인디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분열과 파괴로 이끄는 마법 혹은 악의 담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악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에모에 대한 살해 욕구를 극복함으로써 파괴와 분열 대신 조화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곧이어 그는 다시 한 번 모든 “패턴이 한 점으로 모이는” 비전을 보게 된다. 실코는 이렇듯 악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다양한 민족들이 개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교류?협력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을 반복하여 제시한다. 타요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이질적인 문화들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동등한 자격으로 수용하면서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역동성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의식』은 단순히 부족 전통과의 합류를 통한 인디언 청년의 재부족화(retribalization)와 영적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매우 적극적인 저항의 글쓰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된 생태학적 위기를 경고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초래한 서구의 인간 중심적 이데올로기와 지배 논리의 폭력성에 대한 강력한 비판 담론인 것이다. 실코는 『의식』에서 자연적 재앙은 비인간계의 구성원도 인간과 같은 생태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고 부정한 행동을 하거나 그들을 욕하고 불평을 늘어놓을 때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귀향한 타요가 6년에 걸친 가뭄으로 고향 마을의 “풀이 누렇게 변하며 성장을 멈추었고” 땅은 황무지로 변한 원인을 자신이 필리핀 전선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폭우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인공 타요가 겪는 정신적 혼란 역시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투 피로증의 결과겠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땅 혹은 자연으로부터의 유리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타요의 치유는 땅과의 일체감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예를 들어 버려진 나이트 스완의 집을 방문한 타요가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 “귀뚜라미와 바람, 그리고 포플러의 세계 속에서 거의 다시 살아”나고, 벽에서 떨어진 흙을 손과 얼굴에 바르면서 땅과 연결되는 것을 느끼며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거나, 어머니의 태처럼 몸을 감싸는 낙엽송 덤불 속 깊이 들어가 무릎을 배까지 끌어당긴 채 태아처럼 편안히 누워 있는 모습 등은 모두 자연과의 잃어버린 유대를 회복하는 것이 그의 정신적 치유와 재생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타요의 정신적 구원은 나이트 스완과 체라는 두 여인과의 관계에 의해 완성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이 모두 육화된 자연, 혹은 대지의 신(神)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비와 꽃 그리고 산과 밀접하게 연관된 나이트 스완과의 성관계에서 타요가 얻는 마음의 평화, 강가의 따뜻한 모래밭에서 경험하는 체와의 성적인 일체감은 주변의 풍경 혹은 그 자체와 결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는 또한 인디언들의 전통적 믿음이 곳곳에 배어 있다. 사냥한 사슴의 배를 가르기 전 존경의 표시로 웃옷을 벗어 사슴의 눈을 가리는 타요, “그들을 사랑한 나머지 기꺼이 자신을 포기한 사슴”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코에 옥수수 가루를 뿌리며 진혼의식을 거행하는 조사이어와 로버트의 모습은 한결같이 동식물을 포함한 보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존경, 그리고 감사함을 보여주는 예다. 가뭄과 비에 관한 인디언의 전통적 이야기인 옥수수 어머니(Corn Mother) 이야기 역시 무절제하고 무례한 인간의 행위가 자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풀포기를 다른 곳으로 옮길 때에도 개미들이 놀라지 않도록 주변의 돌과 나뭇가지를 조심스럽게 치우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메뚜기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먼저 발끝을 조심스럽게 풀 속에 넣어보며 걷는 타요의 태도는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보여준다.

실코는 타요의 투병과 치유의 과정을 묘사하는 사실주의적 이야기와 푸에블로 부족의 신화를 비롯한 전통적 이야기를 끊임없이 병치시킴으로써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그리고 초자연적 존재인 ‘체’로 하여금 타요를 구원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서구 문학의 사실주의적 전통을 분쇄한다. 만일 베네딕슨(Thomas E. Benediktsson)의 설명대로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이래 보수적 문학 전통 속에서 현재까지 지속되어온 사실주의적 소설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라면 실코의 사실주의에 대한 반발은 서구 문학 전통뿐만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권위를 해체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코의 생태학적 비전은 궁극적으로 관념적 혹은 권위적 중심주의, 좀더 구체적으로는 서구 중심주의와 그것에 부여된 권위의 해체를 시도한다. 우선 소설의 서두에서 실코는 자신의 작품은 우주의 창조주인 사유의 여인이 생각해낸 것이며, 자신은 그저 “그가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를 당신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함으로써 스스로 저자로서의 권위를 포기하고 자신의 작품이 부족의 전통 혹은 공동체의 소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한 사람의 저자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문학 전통의 권위를 심문하고 폐기하기 위함이다.

실코가 강조하는 전통적 가치의 중심에는 의식과 이야기가 있다. 실코는 타요의 정신적 질병의 치유 과정을 원형적인 변형의식(Transformation Rite)에 등장하는 길을 잃고 곰과 함께 생활하는 전설 속의 어린이나 코요테로 변한 신화적 영웅이 적절한 의식과 시련을 거친 후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일치시킨다. 예를 들어 주술의 베토니가 행하는 고리 의식은 이러한 치유의 의식들 중 하나인데 쇠로 만든 고리를 지나는 행위는 마치 신화에서 주인공의 몸을 감싼 코요테의 가죽처럼 의식을 거치는 당사자의 몸과 마음을 덮고 있는 악의 장막을 제거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타요의 치유는 이와 같은 의식을 통하여 신화적 주인공들의 회복 과정에 동참하고 이를 반복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이외에도 실코는 폭풍 구름을 구해냄으로써 가뭄에 시달리는 부족사회를 구한 신화의 주인공인 태양 남자와 타요를 연계시킴으로써 그의 정신적 치유가 곧 혼돈과 정체성 부재로 고통받는 부족사회의 구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코는 이렇듯 새로운 이야기 방식으로 기존의 날조된 서사를 해체하여 해방과 치유를 도모하는 인디언 문학의 유동성을 드러낸다. 『의식』의 첫머리에서 신화나 전설을 포함한 전통적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질병이나 죽음에 대적하기 위하여” 인디언이 가진 유일한 무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에서 “소설 쓰기는 하나의 ‘Ceremony’이며 소설의 완성은 ‘Ceremony’의 실행”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마데이가 『The Way to Rainy Mountain』(1969)에서 신화적인 목소리, 사회과학적인 목소리, 개인 차원 시적인 목소리를 전복하여 해체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디언의 전통적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것에 기초한 의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전통적 가치관의 회복인 동시에 지배담론의 권위를 적극적으로 폐기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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