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종광 출판 : 작가정신 읽기 : 2004.11.28 ~ 12.03 |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사상이니 대모니 하는 것은 별로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중학교때 부터 서울에서 최류탄 내음을 맞으면서 커왔고,
바로 앞에서 대모의 모습을 보면서 지내왔기 때문이다.
90인가 91년인그로 기억한다. 한남대 성지관에서 꽃파는 처녀(북한영화)를 상연 한다고 한적이 있었고,
전경이 교내까지 들어 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건. 아~ 이게 대학이구나 하는 것이였다.
보도블록을 깨는 녀석을 그것만, 투쟁을 선동하는 녀석들, 사수대, 전경, 도서관에서 창밖으로 구경하는 사람,
지나가면서 불편해 하는 사람, 운동장에서는 체육 수업을....
그것이 대학의 모습이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의견 그대로...
내가 사상 논쟁을 그들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대다니던 녀석들과도, 한남대 녀석들과도,또 이상하게 출정이 있을때마다 꼬박 꼬박 나에게 알려주던, 중경공전 녀석도... (어디서 무얼하고 있으려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나라에 대한 걱정들... 언제나 낙수물이 바위를 뚧는다 이야기 했고,
정 바꾸고 싶으면, 네가 그 자리에 올라가서 바꾸라고 난 이야기 했었다.
너두, 그 자리에가면 똑같아 지지 말고...
지금의 나로서는 당장 내일 굶어야 하는 상황이 더 절실하다. 이 상황에서 대모를 할수 있을까?
그때의 외침조차도 난 배부르게 보인다.
진짜 대모를 해야 할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대모를 하러, 나가면, 그날은 굶어야 한다.
내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과연 대모를 할 수 있었을가?
나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지금도... 하지만, 대전천 다리 아래에서 아이들과 폐지를 주우러 다니고, 꿀꿀이 죽을 같이먹고, 그들과 함께 했던 사람을 기억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함께 하고자 했던...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나역시 마음에 들지않는 세상의 부분들이 있다. 그러기에 그것들을 바꾸고자 한다.
손에 총을 들고, 바꾸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가감으로써 가능한 그런 일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그러했듯,사랑으로... 주일학교 교사 생활이 10년이넘었다.
난 그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왔다. 사상이, 자신의 의견이 폭력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알고, 느끼고, 나누고, 선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 질 수 있도록...
이런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보니, 나름대로 의미있게 아 다은 책이였나?
글쎄. 과거의 모습을 참 많이 떠울리게 하는.. 그런 책이였다.
이책에서 난 처음 느낀것은 참 다양한 시각에서 한 사람을 바라 보고 썼다는 것이 신선하게와 다았다.
은영전등에서 나오는 외전을 읽을때의 느낌처럼,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맞추어 나가는듯한..
내가 알고 있는 다인이와, 타인이 알고 있는 다인이...
다인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서 다인이의 소식을 듣는것 같은 그런 느낌이였다.
신선한 그런 느낌이였다. 오랜만에 옛생각도 하고 말이다. ^^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게간 [문학동네]하계 문예공모에 단편 [경찰서여, 안녕]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었고 2000년 7월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을 발표하며 한국 현대소설의 빈약한 서사성을 회복시켜줄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
작가의 말 71년생 다인이 작품해설 |
우리들의 망각의 늪 속에 매몰된 90년대 초반의 기억을 조심스레 들추어낸 김종광의 장편 소설. 독자들은 건강하고 당찬 그리고 예쁘장하게 생긴 명랑 소녀 71년생 양다인을 만나면서 80년대와 90년대의 교차선에 위태롭게 서서 20대의 시간을 소진한 90학번들의 자화상과 그들에게 있었던 우울한 과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김종강의 신작 소설 [71년생 다인이]는 우리들의 망각의 늪 속에 매몰된 90년대 초반의 기억을 조심스레 들추어낸다. 작가는 우리들의 불명료한 기억을 소생시키기 위해 한 명의 명량 소녀를 독자들에게 파견한다. 만남의 대상은 71년생 양다인이다. 독자들은 이 건강하고 당찬 그리고 예쁘장하게 생긴 명량 소녀 71년생을 만나면서 80년대와 90년대의 교차선에 위태롭게 서서 20대의 시간을 소진한 90학번들의 자화상과 그들에게 있었던 우울한 과거를 파악하게 된다. 김종광은 현명한 작가다. 감상성의 유혹에서 김종광의 소설은 멀리 비켜서 있다 이 점이야말로 김종광 소설의 장점에 해당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는 신파의 어법이 아닌 김종광적인 어법으로 김종광표 후일담 소설 한 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종광은 이미 여러 편의 소설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미학적 요인 중 하나는 경쾌한 유머다. 이 유머에 이글려 그의 소설을 읽어가노라면 김종광의 유머가 아니라 삶의 비애를 환기하는 유머라는 점을 어느새 깨닫게 된다. [71년생 다인이]는 그 지점에 서 있다. 고(등학생)운(동가) 출신인 다인이를 내세워 한총련 운동의 일반적 싸이클(등록금 투쟁 -] 한총련 출범식 -] 대정부 투쟁 -] 범민족대회 -] 선거 투쟁 -] 등록금 투쟁)과 91년 강경대의 죽음에서 시작된 분신 정세, 93년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대정부 투쟁의 명분마저 잃은 학생운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96년 연세대 사태,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등 비교적 최근 상황을 갈무리하고 있기에 90년대 학생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만한 이야기다. 이제는 누구도 관심없는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2002년에도 한총련은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싸움을 계속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
[거기 모인 학생들은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모두 내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눈치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나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나한테만 노래를 시키지 않기에 심술부리기로 작정한 놈처럼 자청하고 나섰다. 내가 아는 유일한 데모가를 불렀다. 내가 [아침이슬]을 부르자, 격렬한 구호와 노래를 주고받던 학생들은, 노골적으로 저런 게 왜 여기 끼여 있나 하는 눈초리로 밥맛없어 하는 눈빛이었다. 내가 [아침이슬]을 록 부르듯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판마저 깨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반쯤은 깨놓은 것 같았다. 다인이 술자리 내내 너를 챙기느라 (나 때문에 여러 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다인이는 간신히 분위기를 억누르고는 했다)신나게 놀지도 못하고 어정쩡했다. 다인에게 미안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인이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몇 번이나 보았다고 좋아한단 말인가. 자조하면서도 다인이랑 사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마도 술에 취했기 때문에 그런 헛생각을 했을 터였다. (/ P.105) |
'이념과 현실사이' 90학번의 초상 전교조. 강경대. 한총련. 최루탄은 1990년대 초반 지독하게 자욱했다. 그때 대학을 다녔던 젊은이들에게는 맵고 독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연기는 곧 걷혀 버렸다. 오래 의지할 만한 기억으로 삼기엔 너무 짧았다. 세상이 바뀌었고 학생들은 여름방학 때 농활 대신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작가는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흘려 보낸다. 71년생 90학번 작가 김종광(31)씨는 71년생 90학번 여학우 양다인 얘기를 썼다.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작가정신 발행)다. '시험 성적은 늘 최고권이었던 중학생. 독서회 가입 및 전교조 가입 교사 지지 시위를 이끈 고등학생. 입학하자마자 등록금 동결 시위를 주도하고 분신까지 시도한 운동권 대학생. 출옥한 뒤 벤처 회사를 차렸다가 돈을 다 날리고 이념의 전선이 아니라 생업의 전선에서 고투하는 여자.' 그것은 어쩌면 다인이와 동갑인 작가의 얼굴일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몸을 누이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정색을 하고 학점과 토익 점수를 관리하지도 못했던. 작가의 말대로 이들은 분명히 386세대도 아니었다. 신세대도, X세대도, 인터넷세대도 아니었다. 80년대 선배 학번들로부터는 학생 운동을 흉내내는 후배 정도로,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세월이 좋아졌는데 괜히 데모나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로 여겨지는 젊은이들.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김종광씨의 소설은 결국 이렇게 묻는 것이다. 다인이의 이야기라지만, 다인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다인이의 남동생과 의붓어머니, 고등학교 친구, 의붓아버지, 대학교 친구, 전경 친구 등 주변인물 6명의 시선을 통해 다인이를 묘사한다. 다인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사람들이 선 자리는 저마다 다르다. 젊은 날 의식화 교사로 몰렸지만 나이 들어 과학 전문 사교육 업체를 차려 큰 돈을 번 의붓어머니, 비행 학생이었지만 다인이에게 경도돼 전교조 지지 데모에 합류한 고등학교 친구, 자식의 데모가 앞날의 걸림돌이 될까 전전긍긍하다가 시간이 지나 명예퇴직을 강요당한 뒤 지나온 인생을 회의하는 의붓아버지…. 71년생 다인이의 삶을 좇던 그들에게 어느 순간 자신이 선 자리가 비춰진다. 그들이 지켜보는 다인이는 어디에 서 있을까. 법정에서 고개 한 번 숙이지 않았던 다인이는 회사를 차렸다가 쫄딱 망하고 나선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한총련 출범식을 다녀온 01학번 동생에게 나는 신념이고 뭐고 다 잃어버렸어. 나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어. 그냥 열심히 먹고 살아갈 뿐이야 라고 말하는 다인이. 아니,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지금쯤 서른을 넘나드는 사람들. 어쩌면 내용이 거칠고 구성이 헐겁다는 비판도 있을 법하다. 그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방식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유쾌하고 분방한 데서 나올 수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 유쾌함은 아픔을 감추려고 일부러 크게 웃는 것과 같은 몸짓이 아닌지. 김지영기자 / 2002.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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